작성 · 검수 박도현 · 최종 검토 2026년 7월 28일
숫자로 3줄
- 이재명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이 브라질에서 136분 정상회담을 갖고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그룹 신설에 합의, MOU 7건을 체결했다.
- EU는 이미 5월 1일 메르코수르 협정을 잠정 발효해 자동차 관세를 최대 절반으로 낮췄고 일본도 6월 협상에 들어가, 한국만 뒤처지면 자동차·전자 수출에 직격탄이 우려된다.
- 브라질은 희토류 매장량 세계 2위권·니켈 부국으로 배터리·방산 공급망의 '탈중국' 카드지만, MOU는 구속력이 없어 실무그룹의 관세·농산물 협상 돌파가 진짜 관건이다.
남미 대륙 한복판에서 나온 두 정상의 ‘손하트’가 단순한 우정의 표시만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과 136분간 정상회담을 갖고, 수년째 멈춰 있던 한-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무역협정 협상을 다시 굴리기 위한 실무그룹 신설에 합의했다. 겉으로는 먼 나라 외교 뉴스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몇 년 뒤 사게 될 자동차·가전 가격표와 배터리 산업의 명운까지 건드린다.
무슨 일인가요
이번 회담은 이재명 대통령의 7박 11일 순방(순방 총정리 기사)의 핵심 일정이었다. 두 정상은 국방·항공우주·핵심광물·에너지·문화·교육 등에서 협력을 넓히기로 하고, 2026년을 ‘한-브라질 전략적 동반자 관계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회담 직후 양국은 우주·에너지·산업기술·영화·사이버안보 등에 걸쳐 양해각서(MOU) 7건을 체결했다(한국일보).
가장 무게가 실린 대목은 무역협정이다. 이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에서 “한국과 메르코수르 간 무역협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고 못박았고(뉴스핌 전문), 룰라 대통령은 “협상 재개에 장애물이 없도록 실무그룹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이 실무그룹은 한국 김용범 정책실장과 브라질의 제라우두 알크민 부통령이 각각 대표를 맡아, 그동안 협상을 막아온 걸림돌을 걷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경제 성과도 곁들여졌다. 회담에 앞서 룰라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한국 주요 그룹 총수들을 만나 “대대적인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고(뉴스1), 룰라 대통령은 “오는 9월 발사체 공동 발사”까지 언급하며 우주 협력에 속도를 냈다.
숫자로 보면
왜 정부가 이렇게 다급한지는 경쟁국들의 시계와 비교하면 선명해진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6년 5월 1일 메르코수르와의 잠정 무역협정을 발효시켜, 남미에 수출하는 자동차 관세를 첫날부터 내리기 시작했다(EU 집행위). 일본도 6월 경제동반자협정(EPA) 협상에 착수했다. 그 사이 한국산 자동차는 여전히 최대 35% 관세를 그대로 물고 있다.
| 구분 | 한국 | EU | 일본 |
|---|---|---|---|
| 협정 상태 | 협상 재개 추진(실무그룹 신설) | 잠정협정 발효 완료 | EPA 협상 개시 |
| 발효 시점 | 미정 | 2026.5.1 | 협상 중 |
| 자동차 관세(내연) | 최대 35% 유지 | 35%→17.5% | 현행 유지 |
| 자동차 관세(전기·하이브리드) | 최대 35% 유지 | 35%→25% | 현행 유지 |
| 주력 수출품 | 자동차·전자·기계 | 자동차·화학·와인 | 자동차·기계 |
표의 관세 숫자가 핵심이다. EU산 내연기관차는 메르코수르 시장에서 관세가 35%에서 17.5%로 반 토막, 전기·하이브리드차는 25%로 내려간다. 같은 값의 유럽차와 한국차가 브라질 전시장에 나란히 서면, 한국차만 수백만 원어치 관세를 더 얹은 가격표를 달게 된다는 뜻이다.
시장 규모도 무시할 수 없다. 메르코수르(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4개국은 인구 약 2억 9,500만 명, 국내총생산(GDP) 약 3조 4,000억 달러로 남미 GDP의 68%를 차지한다. 한국과 메르코수르의 2025년 교역액은 약 140억 달러 규모로, 한국은 전자기기·자동차·부품을 팔고 농산물·원유·육류를 사 오는 상호 보완적 구조다(KDI).
쉽게 풀어보면
학교 앞에 인기 있는 떡볶이집이 딱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떡볶이집(메르코수르 시장)에 들어가려면 원래 모든 친구가 ‘입장료 35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EU라는 친구가 주인과 먼저 친해져서 “너는 이제 17원만 내”라는 도장을 받아냈다. 일본이라는 친구도 지금 주인 옆에 붙어 협상 중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친구만 아직 입장료 35원을 그대로 내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떡볶이(자동차)를 팔아도 EU 친구는 남는 돈이 많으니 값을 더 싸게 부를 수 있고, 손님은 자연히 싼 쪽으로 몰린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입장료 깎는 협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주인(브라질·룰라)에게 달려간 것이다. 이번에 만든 ‘실무그룹’은 입장료 협상을 전담하는 대표 선수 두 명(한국 김용범·브라질 알크민)을 정해 둔 것과 같다. 이제부터 이 두 사람이 세부 조건을 놓고 밀고 당기게 된다.
또 하나, 브라질은 ‘희토류’라는 특별한 흙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가진 나라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스마트폰, 미사일 같은 첨단 제품에 아주 조금씩 꼭 들어가는 ‘마법의 향신료’다. 지금까지 이 향신료는 대부분 중국 한 곳에서 사 왔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걸면 전 세계 공장이 멈춘다. 그래서 한국은 “향신료를 파는 가게를 브라질에도 하나 더 터 두자”며 공급처를 나눠(탈중국) 위험을 줄이려는 것이다. 배터리 필수 광물인 니켈도 브라질에 풍부하다.
배경과 전망
한-메르코수르 협상은 사실 새 이야기가 아니다. 2018년 5월 협상 개시를 선언했지만 2020년 2월 5차 협상 이후 코로나19로 중단됐고, 이후로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이데일리). 그사이 EU가 20여 년을 끌던 협정을 먼저 매듭지어 5월 발효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이 한국에 강한 자극이 됐다.
이번 회담의 성과물인 MOU 7건은 우주 발사장 이용 간소화, 항공우주, 에너지, 산업기술 협력 등을 담았다(아시아경제). 다만 냉정히 보면 MOU는 ‘앞으로 잘해보자’는 약속 문서에 가깝고, 실제 관세를 낮추는 무역협정과는 무게가 다르다. 협상의 최대 난관은 늘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었다. 브라질은 세계적 소고기·닭고기·대두 수출국이라 한국 농가의 반발이 불가피하고, 이 지점을 실무그룹이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타결 속도를 좌우한다.
전망을 정리하면 세 갈래다. 첫째, 실무그룹이 실제로 협상 재개 시점표를 만들어내면 이르면 내년부터 공식 협상 라운드가 다시 열릴 수 있다. 둘째, 농산물·규범 쟁점이 다시 발목을 잡으면 ‘선언은 요란했으나 진도는 더딘’ 과거 패턴이 반복될 위험도 여전하다. 셋째, 무역협정과 별개로 희토류·니켈 공급망과 방산·우주 협력은 MOU를 발판으로 먼저 굴러갈 가능성이 크다.
오구온라인의 시각
이번 회담을 ‘정상 간 케미’나 손하트 사진으로만 소비하면 핵심을 놓친다. 진짜 뉴스는 한국이 이제 ‘지각생’ 포지션에 섰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공식 인정했다는 점이다. EU가 5월 발효로 관세 인하를 시작한 순간부터, 브라질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전자 업계는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구조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의 “더 미룰 수 없다”는 발언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경쟁국 대비 뒤처진 시계를 되감으려는 절박함으로 읽어야 한다.
주의해서 볼 지점은 ‘MOU 인플레이션’이다. 정상회담마다 MOU 건수가 성과처럼 발표되지만,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 7건보다 실무그룹이 6개월·1년 안에 협상 재개 로드맵을 실제로 내놓느냐가 훨씬 중요한 성적표다. 앞으로 이 사안을 추적할 때 독자가 체크해야 할 한 문장은 이것이다 — “다음 공식 협상 라운드 날짜가 잡혔는가?” 날짜 없는 합의는 아직 절반의 성과일 뿐이다.
남들이 잘 짚지 않는 각도를 하나 덧붙이면, 이번 협력의 무게중심은 관세보다 ‘공급망 지정학’에 있다. 한국이 브라질의 희토류·니켈에 공을 들이는 것은 값싼 원자재 확보를 넘어, 특정국 의존을 줄이는 ‘보험’의 성격이 크다. 즉 이 회담은 자유무역 확대인 동시에, 미·중 갈등 시대에 공급망을 여러 나라로 분산하는 ‘경제 안보’ 포석이다. 무역협정 타결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광물·방산·우주 협력이 먼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세율만 볼 게 아니라, 그 뒤에서 재편되는 공급망 지도를 함께 봐야 이 사건 전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