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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버넘 영국 새 총리 취임, 총선 없이 정권 바뀐 이유

서지호 2026년 7월 20일 13
앤디 버넘 영국 새 총리 취임, 총선 없이 정권 바뀐 이유

한눈에 3줄

  • 앤디 버넘 노동당 신임 대표가 7월 20일 제59대 영국 총리로 공식 취임, 스타머는 집권 2년 만에 퇴장
  • 5월 지방선거 참패와 나이절 패라지의 리폼UK 돌풍이 스타머를 끌어내린 결정타
  • 의원내각제라 총선 없이 집권당 대표만 바꿔 총리 교체…2007년 이후 6번째 '선거 없는 총리'

영국이 총선 한 번 치르지 않고 나라를 이끄는 얼굴을 바꿨다. 7월 20일(현지시간) 앤디 버넘 신임 노동당 대표가 제59대 영국 총리로 공식 취임하면서, 2024년 총선 승리를 이끈 키어 스타머는 임기의 절반도 못 채우고 다우닝가 10번지를 떠났다. 유권자는 투표소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총리가 바뀌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이 한 편으로 배경과 원리,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까지 정리한다.

무슨 일인가요

버넘 총리는 20일 스타머 전 총리가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 의사를 전달한 직후, 국왕으로부터 새 정부 구성을 요청받는 절차를 거쳐 총리직에 올랐다. 앞서 그는 지난 17일 노동당 대표로 공식 확정됐는데, 과정이 이례적이었다. 경쟁자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속 의원 379명의 지명을 받아 전체 노동당 하원의원의 약 94%가 그를 지지하는 ‘단독 후보’가 됐다. 현대 노동당 대표 경선 사상 최다 지명이었다. 위스 스트리팅 보건장관과 앙겔라 레이너 전 부총리 등 잠재적 경쟁자로 거론되던 인물들이 모두 버넘 지지로 돌아섰다(Al Jazeera).

스타머를 끌어내린 결정타는 5월 7~8일 잉글랜드 지방선거였다. 노동당은 35개 지방의회의 주도권과 1,300석이 넘는 의석을 잃었다. 반면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극우 성향 리폼UK(Reform UK)는 13개 의회를 장악하고 1,350석 이상을 쓸어담았다. 50년 가까이 노동당 아성이던 그레이터맨체스터 테임사이드가 넘어갔고, 옛 탄광촌 위건에서는 노동당이 방어하던 20석을 전부 리폼에 내줬다. 패라지는 “영국 정치의 역사적 전환”이라고 선언했다(2026 영국 지방선거·위키백과, Al Jazeera).

참패 나흘 뒤인 5월 12일 장관 3명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6월 22일 스타머는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노동당이 나를 다음 총선까지 나라를 이끌 최적의 인물로 더는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버넘의 복귀 경로다. 그는 당시 하원의원이 아니라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이었다. 대표가 되려면 하원 의석이 필요했기에, 동료 의원 조시 사이먼스가 5월 14일 메이커필드 지역구를 스스로 비웠고, 버넘이 6월 22일 보궐선거에서 약 2만5,000표(9,200여 표 차)로 당선돼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의회에 복귀했다(노동당 지도부 위기·위키백과).

날짜(2026년) 핵심 사건
5월 7~8일 지방선거 참패: 노동당 35개 의회·1,300여 석 상실, 리폼UK 13개 의회 장악
5월 12일 선거 책임 지고 장관 3명 사퇴
5월 14일 조시 사이먼스 의원, 버넘 출마 길 터주려 메이커필드 지역구 사퇴
6월 22일 버넘 보궐선거 당선(약 2만5천 표)…같은 날 스타머 사임 발표
7월 9일 노동당 대표 후보 등록 시작
7월 17일 버넘, 단독 후보로 대표 확정(의원 379명·약 94% 지명)
7월 20일 버넘 제59대 영국 총리 공식 취임, 스타머 국왕에 사임

쉽게 풀어보면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 그래서 대통령이 바뀌려면 반드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 그런데 영국은 다르다. 학급으로 비유하면 이렇다. 우리 반 학생들(유권자)은 ‘반장’을 직접 뽑는 게 아니라 ‘분단 대표'(하원의원)를 뽑는다. 그렇게 뽑힌 분단 대표들 중에서 가장 큰 무리(다수당)가 정해지고, 그 무리의 대장이 자동으로 반장, 즉 총리가 된다. 국민이 뽑는 건 ‘의원’이지 ‘총리’가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그러니 무리 자체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그 무리가 대장(당 대표)만 새로 뽑으면 반장(총리)도 그 사람으로 자동으로 바뀐다. 반 전체를 다시 뽑는 선거(총선)를 새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노동당은 2024년 7월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당이 됐고, 그 다수는 지금도 그대로다. 다만 대장을 스타머에서 버넘으로 교체했을 뿐이다. 영국 하원 임기는 5년이라 다음 총선은 늦어도 2029년까지만 하면 된다. 버넘이 선거 없이 3년 가까이 나라를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남은 궁금증 하나. 버넘은 시장이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대표가 됐을까. 대장이 되려면 ‘분단 대표’ 자격, 즉 하원 의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같은 편 의원이 자기 자리를 비워주고, 그 빈자리를 메우는 보궐선거에서 버넘이 이겨 의회에 들어온 뒤 대표에 도전한 것이다. 계주에서 앞 주자가 바통을 넘겨주듯, 의석을 ‘이어받아’ 총리 자리까지 단숨에 달려간 셈이다. 실제로 버넘이 하원의원이 아니었던 탓에 이 우회로가 필요했다.

왜 중요한가요

이번 교체는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다. 영국 정치 지형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100년 넘은 양대 정당 체제가 패라지의 리폼UK라는 제3세력에 양쪽에서 압박받고 있다. 특히 위건·테임사이드처럼 수십 년간 노동당이 ‘텃밭’으로 여겨온 옛 산업·탄광 지역이 보수당이 아니라 리폼으로 넘어갔다는 점이 노동당엔 공포였다. 버넘 카드는 이 ‘레드월(Red Wall)’ 이탈을 막기 위한 노동당의 승부수다.

버넘이 누구인지 보면 그 의도가 읽힌다. 1970년 리버풀 태생(만 55~56세)의 그는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재무차관·문화장관을 거쳐 2009~2010년 보건장관을 지냈고, 2010·2015년 두 차례 당 대표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삼수생’이다. 2017년부터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을 맡아 버스·트램 통합망 ‘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코로나 시기 북부 지역 지원금을 놓고 존슨 정부와 정면충돌하며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힐즈버러 참사 유가족을 오래 대변해 온 이력도 유명하다. 스타머의 중도 노선과 달리, 지역 균형·전통 노동당 색채가 짙은 인물이다(CBS News, The Conversation).

그리고 이건 영국에서 ‘드문 일’도 아니다. 2007년 토니 블레어가 고든 브라운에게 자리를 넘긴 이래, 영국은 총선 없이 집권당 대표만 바꿔 총리를 갈아치우는 일을 반복해 왔다. 특히 보수당 집권기(2016~2022)에는 4명이 그렇게 교체됐고, 리즈 트러스는 취임 44일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버넘은 그 계보의 6번째 사례이자, 브라운 이후 노동당에서는 두 번째 ‘선거 없는 총리’다.

총리 취임 전임자 교체 방식
고든 브라운 2007 블레어 집권당(노동당) 대표 교체
테리사 메이 2016 캐머런 집권당(보수당) 대표 교체
보리스 존슨 2019 메이 집권당(보수당) 대표 교체
리즈 트러스 2022 존슨 집권당(보수당) 대표 교체
리시 수낵 2022 트러스 집권당(보수당) 대표 교체(44일 만)
앤디 버넘 2026 스타머 집권당(노동당) 대표 교체

오구온라인의 시각

이 사건을 ‘노동당이 왼쪽으로 갔다’는 이념 프레임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중도가 무너진 자리를 포퓰리즘이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스타머의 중도 실용 노선은 2024년 압승을 안겼지만, 경제 성장 부진과 개혁 지연 속에 지지층을 붙잡지 못했고, 그 이탈표가 보수당이 아니라 리폼UK로 향했다. 노동당이 버넘을 택한 건 ‘더 진보적인 정책’을 원해서라기보다, 지역 정체성과 진정성으로 승부해 온 그가 이탈한 북부 노동계급 표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남들이 잘 짚지 않는 대목은 이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좌우 대결이 아니라 ‘계급 재편’이며, 그 방아쇠를 당긴 건 패라지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볼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버넘은 국가 재정과 외교를 운영해 본 경험이 없다. 시장(市長)의 성공 문법과 총리의 문법은 다르다. 스타머를 무너뜨린 저성장·재정 압박이라는 근본 문제는 대표가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정당성 논란이다. 그는 유권자가 스타머에게 준 위임장으로 최대 3년을 통치하게 된다. 야당은 즉시 ‘선출되지 않은 총리’라는 공격과 조기 총선 압박을 퍼부을 것이다. 취임 허니문은 짧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주는 함의. 대통령제인 우리는 총리를 이렇게 바꿀 수 없기에 이 장면이 낯설게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의원내각제의 유연성이 위기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물 교과서다. 동시에 리폼UK의 부상은 미국·유럽을 관통하는 포퓰리즘 재편의 영국판이라는 점에서,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없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버넘이 100일 안에 성장과 이민, 재정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은 이내 ‘선거 없는 총리’라는 꼬리표에 눌릴 것이다. 오구온라인은 그의 첫 예산과 조기 총선 여부를 계속 추적하겠다(CNN Bus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