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3줄
- 정부 대출 규제 이후 2억 초과 고액 마통만 증가
- 소액 마통은 감소해 서민층 긴급 자금줄 위축
- DSR 규제 한계로 고소득자 위주 대출 쏠림 심화
정부가 가계부채의 고삐를 죄기 위해 대출 문턱을 대폭 높였습니다. 주택담보대출부터 신용대출까지 촘촘한 규제 그물이 쳐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타난 결과는 씁쓸합니다. 돈이 꼭 필요한 서민들의 숨통은 막혔고, 정작 자금 여력이 충분한 자산가들은 손쉽게 수억 원대 마이너스통장(마통)을 열고 있습니다. 대출 규제가 의도치 않게 ‘금융 양극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은 셈입니다.
최근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개설 현황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흐름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소액 대출이나 일반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소형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한도가 2억 원을 넘는 초고액 마이너스통장은 오히려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핀셋 규제를 비웃듯 자산가들의 자금 통로는 여전히 활짝 열려 있는 모양새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상품 중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 및 잔액 추이에서 기이한 엇박자가 포착되었습니다.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고 은행권에 대출 한도 축소를 압박하면서, 전체적인 신용대출 규모는 관리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세부 지표를 뜯어보면 사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서민들이 급전 창구로 쓰는 5,000만 원 이하의 마이너스통장은 신규 개설이 급감했습니다. 만기가 도래한 기존 계좌들도 한도가 깎이거나 연장이 거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도가 2억 원 이상인 고액 마이너스통장의 개설 건수와 잔액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대출 규제의 칼날이 소득과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취약계층에게만 매섭게 작용했다는 방증입니다.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우량 고객 유치에만 집중한 것도 원인입니다. 대출 총량 규제 하에서 은행은 한정된 재원을 가장 안전한 곳에 배분하려 합니다. 결국 전문직이나 대기업 임원 등 고소득자들에게만 거액의 마이너스통장을 열어주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자금 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 현상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마이너스통장 한도별 이용 행태와 추이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규제 이후 시장이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대출 한도 구간 | 최근 수요 및 잔액 추이 | 주요 가입자 특징 | 규제 영향력 |
|---|---|---|---|
| 5,000만 원 이하 | 가파른 감소세 | 일반 직장인, 영세 자영업자 | DSR 제한 및 한도 축소 직격탄 |
| 5,000만 ~ 2억 원 | 보합 또는 완만한 감소 | 중견기업 직장인, 중산층 | 추가 대출 제한으로 관망세 전환 |
| 2억 원 초과 (고액) | 지속적인 증가세 |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 높은 소득 기준으로 DSR 규제 우회 |
위 표에서 보듯, 규제의 영향은 소득 수준과 대출 한도에 따라 완전히 엇갈립니다. 한도가 높은 고액 계좌는 규제 국면에서도 홀로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책이 정작 억제해야 할 대상은 잡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제동을 걸었음을 보여주는 정량적 증거입니다.
쉽게 풀어보면
이 복잡한 금융 현상을 일상적인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정부가 물 부족 사태를 막겠다며 온 동네의 ‘수도꼭지 사용 제한령’을 내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물을 아껴 쓰자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제한 방식이 독특합니다. 평소 물세를 많이 내던 부잣집에는 아주 크고 넓은 수도관을 그대로 열어두고, 물세를 적게 내던 서민들의 집에는 수압을 극도로 낮추거나 아예 밸브를 잠가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은 커다란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두고 언제든 쓸 준비를 마쳐 놓았습니다. 언제 물이 끊길지 모르니 미리 받아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자산가들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개설해 둔 ‘2억 원짜리 마이너스통장’입니다. 반면 당장 밥을 짓고 씻을 물이 필요한 서민들은 졸졸 흐르는 수돗물조차 구경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이 바로 5,000만 원 이하 소액 마이너스통장의 축소입니다.
결국 전체 물 사용량은 조금 줄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쓰지 못하는 이들만 늘어났습니다. 물이 남아도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유를 부리는 이 기이한 불균형이 현재 금융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이너스통장 양극화의 실체입니다.
배경과 전망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현행 대출 규제의 핵심 잣대인 DSR의 구조적 한계에 있습니다. DSR은 연간 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소득이 높으면 높을수록 빌릴 수 있는 돈의 총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연봉이 2억 원을 웃도는 전문직 종사자는 DSR 40% 규제를 적용받더라도 수억 원대의 마이너스통장을 뚫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습니다.
반면 연 소득이 3,000만 ~ 4,000만 원 선인 일반 서민들은 기존에 가진 소액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이 조금만 있어도 추가적인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원천 차단됩니다. 여기에 은행들의 보수적인 영업 행태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을 압박하자, 은행들은 연체율 우려가 적고 확실한 담보나 신용을 가진 고소득층 위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습니다. 굳이 리스크가 있는 서민 대출을 취급해 골치를 썩이기보다, 고소득 전문직에게 고액 마통을 내주는 편이 은행 입장에서는 훨씬 안전하고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자산 시장이 출렁일수록, 고소득층은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실탄’으로서 고액 마이너스통장을 유지하려 할 것입니다. 반면 서민들은 급전 마련을 위해 저축은행이나 카드론 등 제2, 제3금융권의 고금리 대출로 내몰릴 위험성이 큽니다. 이는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를 초래하는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오구온라인의 시각
정부의 획일적인 대출 규제는 결국 든든한 사다리를 가진 이들에게만 기회를 열어주고, 맨몸으로 올라가려는 서민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라는 거시적 목표에만 매몰되어, 정작 서민들의 긴급 자금줄까지 차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소득 기준의 일방적 DSR 적용 대신 실수요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고려한 맞춤형 예외 규정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정책적 유연성이 시급합니다.
참고 출처: 매일경제